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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년이 온다 - 한강

빛나다00 2025. 4. 23. 18:20
 
소년이 온다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은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이며 깊은 울림”(뉴욕타임즈),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문학평론가 신형철)이라는 찬사를 선사한 작품으로, 그간 많은 독자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출판일
2014.05.19


『소년이 온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그저 ‘읽는 책’이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체험이었고, 고통이었고, 동시에 깊은 울림이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내 마음 한편엔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은 듯했다.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된다. 열다섯 살 소년 ‘동호’는 친구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으로 향한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그날의 광주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폭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소설은 동호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 침묵, 죄책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폭력의 묘사를 자극적으로 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줄임표와 공백, 절제된 문장 속에 담긴 고통은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왔다. 독자가 상상할 여지를 남기면서도, 진실을 피하지 않게 만든다. 진실을 마주한 이들, 말하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그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가?”

『소년이 온다』는 단지 광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광주의 5월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 뉴스에서 접한 단편적 정보들, 교과서 속 짧은 문장들. 그 속에서 나는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그 착각을 단숨에 깨뜨렸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말하는 일’이고, ‘기억하는 일’이며, ‘잊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은 단지 과거를 조명하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요구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세계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가.”
“진실 앞에서 나는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서 머물고 있다. 아마 오래도록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잊지 않기 위해,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소년이 온다』는 나에게 있어 그런 책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내가 진짜로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소중한 책이다.